작가소개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는 무하로부터 시작해 무하에서 꽃을 피웠다"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독창적인 미술이 꽃피웠던 시기
거장의 작품 속으로

고국 체코에서 알폰스 마리아 무하(Alfons Maria Mucha)로 널리 알려져 있는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는 1860년 7월 24일에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받던 슬라브 지역 중 하나였던 모라비아 남쪽 작은 마을인 이반치체에서 출생했다. 여섯 자녀중 넷째로 걸음마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드로잉에 대한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던 무하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를 따라 수년간 마을의 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했다. 모라비아의 중심도시 브르노에 위치한 명망 높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고등 교육을 받으며 성당의 예술-건축, 프레스코화, 조각과 장신구를 늘 가까이서 보며 느꼈다.

1885년 무하는 독일에서 가장 유서 깊고 권위 있는 미술학교 중 하나인 뮌헨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슬라브족으로 꾸려진 예술가 모임인 슈크레타 클럽의 대표가 되어 같은 슬라브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속적인 우정을 쌓았다. 이후 문화예술계의 큰 흐름을 주도하고 있던 파리로 이주해 쥘리앵 아카데미와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 미술공부를 하면서 책이나 잡지에 삽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
1895년은 무하의 삶과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파리 연극계의 슈퍼 스타인 사라 베르나르를 위한 그의 첫 번째 포스터 <지스몽다 Gismonda>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점차 포스터 아트의 대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선보이는 모습>

길고 폭이 좁은 구성의 실사 크기의 여배우를 표현한 그의 디자인은 당시 파리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기존의 포스터와는 확연히 달랐으며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곧 수집가들은 무하의 포스터를 얻기 위해 전단을 붙이는 이에게 뇌물을 건네기도 하고 심지어 밤에 몰래 면도칼로 포스터를 뜯어내는 모험을 하기도 했다. 사라 베르나는 무하에게 포스터 디자인뿐만 아니라 무대와 의상 제작까지 의뢰했다. 또한 1896년에 인쇄업자 샹프누아와 광고 포스터 및 장식 포스터 제작을 위한 독점적인 계약을 체결하고 많은 상업 디자인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1910년 초반 무하는 그의 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온다. 프라하 시의 의뢰로 시청사의 시장실 내부 벽화 작업을 마친 무하는 마침내 20편의 대작으로 구성된 <슬라브 서사시> 작업을 시작한다.  슬라브 서사시는 1000년이 넘는 슬라브족의 역사를 축하하고 체코 관련 주제들과 다른 슬라브족 사람들을 다루었다. 1912년에 시작되어 25년에 걸쳐 완성된 이 작품들은 무하가 그리던 꿈의 실현과도 같은 것이었다. 슬라브 민족의 통합과 번영을 꿈꾸던 애국자로서의 정서를 담아낸 명작 슬라브 서사시는 프라하 시에 공식적으로 기증되었다.

<슬라브 서사시> 를 작업하는 무하

'The artist must remain faithful to himself and to his national roots.'

'예술가는 반드시 자기 자신과 근본적 조국에 대한 신뢰를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