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구성

아르누보를 꽃피운 화가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거장

우아한 인물 표현과 화려하고 세련된 장식으로 세기말 파리 거리를 수놓은 신선했던 알폰스 무하의 원작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결코 흔치않은 기회이다.
알폰스 무하 재단에서 엄선된 240여 점의 유화, 판화, 디자인 상품, 장식품, 드로잉 등을 포함하는 이번 전시는 아르누보의 꽃이라 불리는 무하의 생애 전반에 걸친 예술세계와 그가 오늘날 현대예술과 상업 디자인에 미친 영향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Section 1) 무하스타일을 완성하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무하의 생애와 더불어 19세기 말 파리의 문화적, 예술적 배경과 함께 그래픽 아티스트로서의 작품활동을 보여준다. 무하가 미국을 방문하던 1904년에 그는 이미 전 유럽에서 대표적인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미국 주요 신문 매체들은 무하를 '포스터 예술의 별' 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장식 예술가'라고 칭했다. 전시 구성은 무하가 자료수집 용으로 모은 장식품들과 함께 사진, 유화, 드로잉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Section 2) 스토리텔링의 예술

무하는 근본적으로 '선형작가'였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전 제작된 초기 삽화에서는 빠르게 형태를 잡아내는 천재적인 재능과 더불어 풍성한 선들을 통해 이야기를 담아내는 창조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기술과 스타일을 판화 제작에 도입하면서부터 그는 포스터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전 이미 파리에서 성공한 삽화가가 되어 있었다.
이 섹션에서는 연극적, 서사적 요소 등 무하 스타일을 이루는 주요 요소들을 살펴보며 파리에 머물기 전 체코의 풍자 잡지에 실렸던 연재 만화부터 그가 직접 디자인한 책, 잡지의 삽화 등을 만나볼 수 있다.

Section 3) 광고 예술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를 모델로 한 첫 번째 포스터인 지스몽다(Gismonda)가 성공을 한 1894년에 무하는 포스터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벨 에포크 시절의 파리는 다색 석판화의 대량 생산을 통한 광고 효과로 인한 소비 증가로 포스터 광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1896년과 1904년 사이 무하는 출판업자 샴푸누아(Champenois)를 위해 100점 이상의 포스터 디자인을 진행 하였는데, 이는 무하가 아르누보 양식을 이끄는 선구자로서 명성을 쌓는데 큰 일조를 했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를 모델로 한 첫 번째 포스터인 지스몽다(Gismonda)가 성공을 한 1985년에 무하는 포스터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벨 에포크 시절의 파리는 다색 석판화의 대량 생산을 통한 광고 효과로 인한 소비 증가로 포스터 광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1896년과 1904년 사이 무하는 출판업자 샴푸누아(Champenois)를 위해 100점 이상의 포스터 디자인을 진행 하였는데, 이는 무하가 아르누보 양식을 이끄는 선구자로서 명성을 쌓는데 큰 일조를 했다.

이 섹션에서는 아르누보 스타일의 대가로 성장한 무하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된 1890년대를 주로 다룬다. 사라 베르나르를 디자인한 작품을 포함해 상징적인 포스터들과 다양한 상업적인 제품 등 대중적인 '브랜드' 이미지로의 소통을 위한 무하의 디자인 전략을 보여준다.

Section 4) 만인의 예술가

전반적인 그의 삶을 살펴보면 무하는 사회에 헌신적인 예술가였다. 예술가는 예술이 주는 영감의 힘을 빌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1898년 프리메이슨과 같은 다양한 사회 개혁 집단에 가입해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의 대중화 프로젝트를 시행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번 섹션에서는 아르누보 양식 그 자체라고 평가되는 무하의 장식 패널과 그의 판화가 성공 하기까지의 문화적 배경을 살펴본다. 또한 무하의 예술적 철학과 무하 스타일 이면의 디자인 요소를 찾아본다.

Section 5) 미(美) –일상생활의 영감

아르누보 양식은 20세기 모던 디자인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고전적인 장식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과 빠르게 변모하는 사회 환경에 발맞추어 미학의 아름다움을 보급하고 많은 대중의 삶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무하가 디자인 한 제품과 패킹 디자인, 파리에서 활동한 보석가 조르주 푸케(1858-1929)와의 콜라보레이션 등을 살펴본다. 또한 Documents decoratifs(1902)와 Figures decorative (1905) 등 예술가와 제조업자를 위해 제작한 디자인 핸드북을 만나볼 수 있다.

Section 6) 무하 스타일 이후의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무하의 명성과 아르누보 양식은 잊혀져 가는 듯 했으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주목 받게 된다. 1963년 런던의 빅토리아&알버트 미술관에서 무하의 아들 이르지 무하(1915-1991)와의 협업으로 개최된 무하의 회고전 ‘아르누보와 알폰스 무하 展’은 이러한 움직임에 기여했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알폰스 무하의 영향을 받은 한국과 일본의 만화가들을 소개한다. 무하 특유의 화려한 장식성과 인물을 중심으로 한 구성은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 다양한 만화와 케릭터로 만나 볼 수 있다. 국내 작가로는 임주연, 고야성, 추혜연의 작품이 일본 작가로는 CLAMP, 이즈부치 유타카의 작품이 공개된다.